반유대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Yael Eckstein과의 대화
게시 됨: 2022-03-02IFCJ 회장 겸 CEO인 Yael Eckstein은 현재 모든 사역 프로그램을 감독하고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국제 친목회(The Fellowship)의 국제 대변인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IFCJ에서 현재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Yael은 글로벌 수석 부사장, 수석 부사장, 프로그램 개발 및 사역 아웃리치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남편과 네 자녀와 함께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는 Yael은 출판된 작가이자 존경받는 사회 서비스 전문가입니다.
Yael Eckstein은 Jerusalem Post, The Times of Israel 및 기타 출판물에 기고했으며 세 권의 책의 저자입니다. Generation to Generation: Passing on Faith of Faith to Our Children, Holy Land Reflections: A Collection of Inspirational Insights from 이스라엘, 그리고 Yael과 함께하는 영적 요리. 또한 이스라엘 생활, 유대교 신앙, 유대교-기독교 관계에 대한 그녀의 통찰력은 전 세계 1,500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매주 5회 방송되는 Fellowship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Holy Land Moments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Yael Eckstein은 다른 글로벌 조직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전국 텔레비전에 출연했으며 공통 관심사에 대해 미국 및 세계 지도자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Gordon Robertson과 함께 CBN의 The 700 Club에 특집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2015년 5월 워싱턴 DC의 국회 의사당에서 열린 종교 자유 패널에서 중동의 종교 박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젊은 지도자 중 한 명으로서 그녀의 영향력은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의 2020년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인 50인과 알제마이너(Algemeiner)의 2019년 유대인 100인에 포함되면서 인정받았고, 5월에는 나심(여성) 매거진의 커버 스토리로 실렸습니다. 2015.
시카고 외곽 일리노이주 에반스톤에서 태어나 이스라엘 토랏 체세드 신학교에서 성서 연구, 뉴욕 퀸스 칼리지에서 유대인 및 사회학 연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추가 연구를 포함하여 미국 및 이스라엘 기관에서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 Yael Eckstein은 또한 미국에서 히브리어 및 유대인 연구 교사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출애굽기 13장부터 17장까지는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군대와 홍해 사이에 끼어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건널 수 있도록 바다를 가르셨고 애굽 사람들은 파도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목마름과 굶주림을 경험하고 모세에게 원망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돌보셨습니다. 쓴 물을 달게 하시고 모세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비처럼 내리게 하시고 메추라기를 그들의 진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른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아말렉이라는 나라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오늘 살펴볼 구절은 아말렉과의 전쟁을 묘사합니다. 출애굽기 1710-13장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대로 아말렉과 싸웠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한 이스라엘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내릴 때마다 아말렉이 유리했습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가 피곤할 때마다 그의 손을 받쳐 주어서 전쟁에서 이기기까지 종일 그의 손을 붙들 수 있게 하였으니 하나는 이쪽에, 다른 하나는 저쪽에 있게 하여 모세의 손이 흔들리지 않게 하였더라 일몰까지. 모세가 그렇게 했을 때 여호수아는 칼로 아말렉 군대를 이겼습니다.
모세의 손의 위치가 이 전투의 결과를 어떻게 결정했습니까?
랍비들은 모세의 손이 전쟁을 지휘한 것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이 이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모세의 손에 의해 인도되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비유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나님을 그들의 소망과 구원자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을 내리자 백성들의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다면 세상의 그 어떤 화살도 적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우리 모두가 믿음이 우리 삶에서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이 유대인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의 후손이며 그의 이름은 아말렉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 남쪽에 살면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 외에는 아무 이유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아말렉 나라는 이 세상에서 악의 성경적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그들은 도덕이나 정의에 대한 개념이 없는 무신론적 세계, 즉 일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세계라는 개념을 지지했습니다. 유대 현자들은 아말렉이라는 단어의 수치적 가치가 의심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아말렉의 목표가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권위와 우리 삶에 대한 그분의 개입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아말렉과의 전쟁이 믿음으로 싸워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아말렉이 세상에 뿌린 악독에 대한 해독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보여준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는 모두 그 일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아말렉과 싸우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출애굽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을 들어 여호와의 보좌를 쳤은즉 여호와께서 아말렉 사람을 대대에 치시리라”(17:16).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아말렉과 싸우고 있습니까?
출애굽기 17장 16절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왕좌를 의미하는 키세(Kisseh)라는 단어에 글자가 빠져 있습니다. 랍비들은 이것이 우리에게 아말렉 족속이 있는 한 하나님의 보좌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왕국은 아말렉이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완전히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25:17에서 우리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민족의 기억조차 남지 않도록 아말렉을 멸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말렉이라는 나라가 아직도 존재합니까?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파괴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야 합니까? 유대 전통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아말렉은 국가가 아니라 관념입니다. 아말렉이 옹호한 신념과 가치는 우리가 세상에서 뿌리 뽑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오늘날 우리 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반유대주의의 뿌리, 유대 민족에 대한 비이성적인 증오가 수세기에 걸쳐 그토록 많은 유혈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말렉을 이길 수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아말렉과 싸우도록 부름 받은 한 가지 방법은 반유대주의와 모든 비합리적인 증오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또한 하나님을 공격하고 세상에서 그분을 제거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 또는 사람들의 그룹이며,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분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아말렉과 싸우는 또 다른 방법은 참되고 도덕적이며 정의로운 것에 대한 성경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아말렉이 가하는 가장 큰 위협은 외부의 적의 형태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부에서 마주하고 있는 적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우리 마음과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명기 25:18에서 성경이 아말렉의 공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는 "그들이 여행 중에 너를 만났습니다"이지만 원래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는 또한 "그들이 여행 중에 너를 식게 했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랍비들이 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10가지 재앙과 바다가 갈라지는 재앙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분에 대한 사랑과 연결로 뜨겁게 타올랐지만, 아말렉이 동행하여 여행 중에 그들을 식혔습니다. 아말렉은 그 불 같은 믿음을 식혔습니다. 아말렉은 마치 “네 하나님이 지금 어디 있느냐?” 그때나 지금이나 아말렉의 사명은 외부와 내부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쐐기를 박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식히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지, 그분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지, 그분이 정말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 의심의 씨앗을 뿌리려고 합니다. 아말렉은 우리 머리 속에 스며들어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정말 믿습니까?”라고 묻는 목소리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목소리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번 한 번만 잘못된 일을 해도 괜찮다고 확신시키려는 목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신경 쓰실 겁니까? 그리고 아말렉이 정말로 번성하는 것은 우리가 도전에 직면할 때, 비극이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 때입니다. 신명기 25장 18절에서 성경은 아말렉이 “네가 곤비할 때에”를 공격했다고 알려 줍니다. 바로 그때가 바로 우리가 구타를 당하고 상처를 입었을 때 아말렉이 공격하는 때입니다. 그 때 아말렉은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니 어찌 선하신 하나님이 악한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으리이까”라고 말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아말렉은 또 어떻게 우리를 공격합니까?
모세 시대의 전쟁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아말렉과의 전쟁을 합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이 어디에도 계시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공격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록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선언함으로써 아말렉을 물리칩니다. 3세기 탈무드의 현자인 랍비 하니나 바 하마는 “위로부터 명령을 받지 않고서는 새끼손가락을 다치게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는 지상에 있는 인간의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확장되며 하나님의 지식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우리가 이 메시지를 일상 생활에 더 많이 통합할수록 우리는 아말렉의 남은 자를 더 약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아말렉은 또한 더 사악하고 덜 분명한 방식으로 내부에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아말렉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고, 아말렉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방법은 우리 자신을 의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 때 – 우리를 돕고, 보호하고, 격려 –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삶에서 그분의 임재를 의심하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은 우리의 자신감과 목표 달성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때때로 우리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더 분명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그분이 더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탈 수 있도록 자전거 안장을 놓아주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가 되었음을 아실 때만 놓아주십니다. 아말렉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것을 믿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심하게 될 것이며 성공할 수 있었을 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아말렉은 우리가 충분히 선하지 못하며 우리가 우리의 도전을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우리 머리 속의 음성입니다. 아말렉은 우리의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며 우리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속삭입니다.
이 끝없는 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지원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이 숨겨져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 나아가 우리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렵고 놀랍게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주인이 우리 편이심을 알 때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반유대주의와 싸우고, 성경적 가치를 옹호하고, 믿음을 유지하고, 자기 회의를 극복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아말렉과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아말렉을 무찌르는 데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우리는 모세의 손을 들어 올리는 것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자랐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이 있었고 전쟁은 그들에게 유리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손이 피곤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무너졌을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말렉과 싸우는 것 외에도 서로를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전투에서 다른 사람들도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하거나 믿음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지원에서 항상 이러한 지원과 그 효과를 봅니다.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우리 눈앞에서 예언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적들은 말과 미사일, 그리고 다른 형태의 테러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원수는 유대인들이 믿음을 잃고 포기하기를 원합니다. 원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사랑을 의심하기를 원합니다. 원수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느끼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날마다 육체적,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느냐 포기하느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기독교인을 대신하여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국제 친목회(International Fellowship of Christian and Jewish Fellowship)의 기여가 매우 중요합니다. 폭탄 대피소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미사일로부터 보호할 뿐만 아니라 사기를 북돋아 희망이 있고 성경의 말씀이 사실임을 일깨워줍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피난처에 들어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사랑으로 기부함”이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아말렉과의 첫 전투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든 것처럼 우리는 이스라엘의 팔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지지를 보일 때 그들은 여기에서도 우리와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신명기 25장 19절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했습니다. 이번 주에 어떻게 아말렉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믿음을 강화할 수 있습니까? 특히 피곤하고 지칠 때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강화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펼칠 수 있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까? 영감을 주는 성경 이야기?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함으로써 어떻게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세가 수천 년 전에 시작한 믿음의 싸움은 우리 각자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